지난 두 글에 이어 다양성 주제를 좀 더 붙잡아보려 한다. 언급하지 않았던 소수자가 있어서다. 존중과 포용이 절실한 영역이자, 사회적 무관심을 가장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지하철 시위로 시선을 끌었던 분들. 장애인은 어쩌면 소수자 중에서도 차별과 배제로 인한 고통을 가장 물리적으로, 그래서 직접적으로 겪는 대상이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장애인의 패션 환경을 통해 장애인이 직면한 소외를 살펴보려 한다.
장애인을 위한 의복의 필요
우리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옷을 입는다. 사회적 목적과 기능적 목적이다. 패션이 자아와 취향의 표현이라면, 의복은 생존의 영역이다. 신체 보호를 위해,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해 매순간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편의가 보장되어야 한다. 입고 벗기 힘들고, 움직이기 불편하거나, 솔기가 따갑고, 허리춤이 계속 내려가는 옷을 입으면 하루종일 괴롭지 않은가. 편리한 의복은 생활에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요소다.
보통의 옷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옷을 입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특히 외부 신체기능의 장애가 있는 경우가 그렇다. 앉았다 일어서면 허리춤을 끌어올리거나 바짓단을 내리는 등 옷매무새를 정리해야 되는 것처럼, 휠체어 장애인은 허리춤이 내려가고 발목이 시려운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몸이 대칭이 아닐 경우에는 한쪽이 흘러내리기도 하고, 어깨나 팔 부분이 움직이기 불편할 수도 있다. 스스로 옷을 입고 단추를 채우기 힘들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의복’은 매우 부족하다. 국내에는 삼성물산의 ‘하티스트’와 이베이코리아의 ‘모카썸위드’ 외에는 장애인 패션 브랜드를 찾기 힘들다. 해외에는 타미 힐피거가 2017년에 장애인 라인을 런칭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 검색포털에 찾아보니 선택권은 6개뿐, 그것도 모두 남성복이다. 공급이 적다보니 가격도 비싸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편안한 의복을 찾기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장애인을 위한 패션의 필요
장애인은 의복 선택지가 좁기 때문에 패션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또한 제한적이다. 스스로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밴드 바지만 입어야 하는 등 상황에 맞는 수동적 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패션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은 중요하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선택하고, 가꾸는 것은 한 개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편리함에서 나아가, 본인의 스타일과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복이 물리적 기능을 의미한다면 패션은 사회적 기능과 연결된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골라 스스로를 꾸미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자기표현이자, 세상과 만나는 능동적인 태도와 연결된다. 패션은 자아정체성을 표현하고, 자신감을 표출하며, 삶에 대한 주체적인 태도를 형성한다.
미국의 장애인 패션 스타일리스트 스테파니 토마스(Stephanie Thomas)는 장애인을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개발했다. 스테파니는 장애인 패션 스타일링을 교육하고, 장애인 패션 잡지를 제작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직업의 장애인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테파니가 장애인에게 패션 스타일링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다. 장애인도 당당하고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장애인 패션 디자인은 어렵고 힘들까
장애인을 위한 의복은 무엇이 달라야 하는 걸까? 조사와 연구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분야가 한정적인 걸까? 장애인 의복 디자인에 관한 연구에서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
- 움직이기 자유로움
- 스스로 입고 벗을 수 있음
- 안전하고 편안함
- 세탁이 용이하고 쉽게 구겨지지 않음
- 보온 및 통풍, 땀 흡수
마지막 두 조건은 비장애인의 의복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건이고, 적절한 소재를 활용하면 되므로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움직이기 편하고,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으며, 편안한 옷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바로 디테일이다.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오래 앉아 있어도 옷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의 뒷부분이 더 길어야 하고, 바지 밑단도 길어야 한다. 스스로 입고 벗기 편하도록 자석단추를 달거나 고리가 달린 지퍼를 활용해도 좋다. 삼성물산 브랜드 ‘하티스트’는 코트 뒷면의 길이를 조정해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고, 어깨에 바느질 솔기가 아니라 밴딩을 숨겨두어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패션업계는 매 시즌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다양한 디테일을 열심히 고민하고 개발한다. 반면, 장애인 패션 디자인은 매 시즌 새로울 필요도 없고, 장애의 형태에 따른 유형화된 접근이 가능하다.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은 패션업계에서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 절대 아니다. 심지어 장애인 패션 시장의 가치는 적지 않다. 장애인이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미국은 장애인 패션 시장의 가치를 13억 달러로 측정한다. 잠재성이 높은 분야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장애인 패션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디자인이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고 수지가 맞지 않다는 것보다는, 무관심이 확실하다.
“장애인을 위한 옷을 만드는 건 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뿐, 대단한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니다.”_마리아 오설리반 아베이라트네(장애인 패션 플랫폼 Adaptista CEO)
장애인에 대한 포용의 필요
다양성 주제에서 장애인에 대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이들이 마주하는 차별 중에 특별한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의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부분이다. 패션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것은 사회의 기초적인 생활 인프라에서 소외된 현실을 보여준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도, 옷이라는 삶의 기본 요소에 대한 선택권이 부족한 것도, 모두 일상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물리적인 차별을 직면해야 하는 환경이다. 장애인 패션 스타일리스트 스테파니 토마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애완견을 위한 옷도 있는데, 왜 장애인을 위한 옷은 만들지 않는가?”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은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라고 말한다. 바꿔야 할 것은 장애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포용성(inclu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다양성이 존중의 태도를 의미한다면, 포용성은 실질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 시스템을 형성하기 위해 ‘실천’이 강조된 개념이다. 포용성은 서로 다른 개개인이 차별, 배제, 소외받지 않도록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장애인을 존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비장애인처럼 일상을 누릴 수 있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약 265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약 5%를 차지한다. 20명 중에 1명이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장애인을 마주한 경험에 비하면 생각보다 높은 비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미비한 까닭은 관심의 부족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포용의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장애는 언제 누구에게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혹시나 내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다면 부족한 인프라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두렵기만 하다. 장애에 대한 포용은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다. 세상이 모든 삶을 아우를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길.
- Bella Webb, “Tommy Hilfiger ramps up adaptive fashion. Who’s next?”, Vogue, 2021
- Curteza Antonela 외 3명, 「Designing functional clothes for persons with locomotor disabilities」, AUTEX Research Journal, 2014
- FromA, “다양성에서 포용성으로”, 2021
- Emily Farra, “This is what’s missing in fahsion’s inclusivity movement”, Vogue, 2021
- Stephanie Thomas, “Fashion Styling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TEDxYYC, Youtube, 2016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1년 한 해 동안 새롭게 등록한 장애인 8만 7,000명”, 2022
- 이베이코리아, “장애인-비장애인 경계 없이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의류”, 2018
- 중앙일보, “휠체어 탄 장애인의 옷은 디자인부터 달라야 합니다.”, 2019
- 한국장애인개발원,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장애 패션 스타일리스트 ‘스테파니 토마스'”, 2019